군대 이야기라고 썼습니다.
군대 이야기 싫어 하시는 여성 분들은
이 시점에서 계속 읽을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번 유격장의 패싸움을 경험한 그 전방부대 소위의 체험담입니다.
실명을 피하고 그저 조소위(가명)라고 하겠습니다.
10명의 부대원을 홀로 인솔하여
유격 훈련을 뻑쩍지근하게 마치고 돌아온 조소위는
중대의 나머지 모든 간부와 병사들을 2차로 유격 훈련에 보내고
홀로 썰렁한 중대를 지키며 10명의 병사들을 일주일간 관리합니다.
낮은 낮대로 괜찮았습니다.
병사들이 삐라 수집차 산을 수색하고 주워 온 밤을 오순도순 삶아 먹기도 하고
간단한 교육훈련을 하며 빈둥빈둥 여유로운 일주일을 보내는데
밤이면 누가 야간 근무를 서 줄 사람이 없으니
일주일간 퇴근 없이 밤낮으로 근무를 서게 된 것이죠.
이런 흐트러진 일주일이 흘러가자
부대원들의 군기가 급속도로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패기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조소위는
연병장에 부대원을 총 집합시킵니다.
연병장 단상에 완장과 권총을 차고 올라서서는
짧은 훈시를 마치고 바로 얼차려에 들어 갑니다.
한 손으로 엎드려 뻗쳐를 한 시간 할래 아니면
목봉을 메고 연병장 10바퀴를 돌래
10명의 대표 격인 고참 이병장은
잠시의 고민 끝에 목봉을 선택합니다.
한 손으로 엎드려 있으면 10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목봉은 무겁지만 속도도 조절할 수 있고
서로 서로 격려하며 버텨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역시 고참다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자 조소위
8바퀴는 구보, 2바퀴는 오리걸음이다.
목봉을 메 보셨나요?
오리걸음을 해 보셨나요?
이 둘을 합쳐서 연병장을 두 바퀴 돈다는 것은
미국 최정예 네이비실에서도 없는 일이고
북한의 남파 공작부대에서도 하지 않는 훈련입니다.
그러나 하라면 해야 하는 군대.
10명의 병사들은 목봉을 메고 연병장 8바퀴를 구보로 돌았습니다.
평소 늘 웃음을 잃지 않던 서무계 상병의 그 괴로워 하던 일그러진 얼굴이
조소위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2단계로 전환
목봉 메고 오리걸음을 시작하고 바로 얼마 후
목봉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침몰합니다.
고참 이병장이 단상에 버티고 있는 조소위에게 대표로 와서
도저히 오리걸음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조소위는 탄띠를 풀어 권총을 내려 놓고
완장이 걸린 상의를 벗은 뒤
근육을 바람에 휘날리며 아무 말 없이
혼자 목봉을 메고 오리걸음으로 병사들이 채우지 못한 나머지를
대신 하는 것이 급조된 멋진 계획이었는데....
근육을 바람에 휘날린 것 까지는 잘 되었지만
커다란 나무 목봉이 혼자의 힘으로서는
아예 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안 들어 봤기 때문에 얼마나 무거운지 몰랐던 것입니다.
매우 당황한 조소위는 당황한 얼굴을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초인적인 힘을 내어서 결국 인간이 혼자서는 스스로 들 수 없다는
무거운 목봉을 짊어지는 데 성공하고 바로 홀로 오리걸음을 시작합니다.
이 때, 지쳐 쓰러진 병사들 사이에서
고통과 공포보다 더한 어떤 경외감이 일어나게 되었고
고참 이병장의 구호 아래 병사들은 일제히 조소위 뒤를 따릅니다.
이런 엉뚱한 리더쉽에 당한 병사들
세월이 흘러 이제 자기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며
또라이 조소위 얘기를 하기도 했겠죠?